Small Is Beautiful
A Homage to Ernst Schumacher's works and thoughts. "Small is Beautiful."
오후 세 시쯤 산책을 나섰다. 중고 100mm 매크로 렌즈를 들고. 매크로 렌즈는 평소에 지나치는 것들을 작은 것들을 경외하며 바라보게 돕는 명상 도구다.
초점거리가 짧고 프레임 영역이 작아서 섬세한 몸놀림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자동초점으론 어림없다. 작은 움직임에도 초점이 흐트러지고 만다. 숨을 죽이고, 뷰파인더에 신경을 집중해 그 작은 피사체가 또렷히 보일 때까지 휠을 돌린다. 땅에 납작 엎드리거나 구석에 한껏 몸을 붙이고, 허리를 뒤트는 요상한 자세도 마다 않는다. 잡념이 끼어들을 틈은 없다. 시간감각도 무뎌진다. 마침내 자의식에서 놓여난다. 때론 내 몸이 정말로 작아진 듯한 착각한다. 고작 몇센티미터가 시야의 전부가 되어 바람결 하나 햇빛 한줄기에도 민감해진다. 내 눈을 기어가는 저 작은 벌레가 바로 내가 된다. 인도 위를 굴러오는 유모차 바퀴 소리가,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의 기척이 천둥처럼 커 깜짝 자지러진다.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는 흙과 벌레, 풀과 나무, 씨앗과 열매에는 제 각기 우주가 들었다. 그 무늬와 빛깔과 모양 하나하나가 완전하다. 심지어 가지끝에서 시들어가는 잎도 땅에 떨어져 썪어가는 꽃망울도 마찬가지로 완전하다. 이 모든게 실은 죽음인 동시에 탄생이기에. 전체로 보면 자연은 언제나 생동하고 있다. 조용하게 아우성치고 천천히 내달린다. 계절을 돌아 천지를 흘러 매 순간 세상을 바꾼다.
바로 이 물아일체의 감각. 자연에 대한 경외와 전율이 나를 지금 여기까지 이끈 건 아닐까. 민들레 홑씨처럼 때로는 위태롭게 그러나 홀가분히 살도록 하는 그 어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