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그녀의 조각들
친구 S를 보러 파리에 갔다. 세상이 아직 여름이라 불릴 때.
서툰 칼질에 베인 손가락의 상처가 감쪽같이 없어질 만큼의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나의 이번 여행은 S의 일상을 겪고 그것의 일부가 되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끝없이 나타나는 마룻바닥의 긴 머리카락이고, 다세대 주택의 하나 뿐인 세탁기이거나 눈 깜짝할 새에 불어나는 설거지였다.
밤의 쎈느 강. 그녀의 지난 쓸쓸함과 막막함을 함께 다시 걸어본다. 그러다가도 중국인
거리의 훈훈한 쌀국수로 다시 희망을 차 올린다. 나는 마레지구가 그녀에게 활력이었고 퐁피두 센터는
때론 당혹스런 학교 숙제였음을 배운다. 값싼 감상주의가 넘쳐나는 몽마르트의 악취를 맡기고 언어들 사이의
불화를 재현하는 무용극을 보며 정신이 혼미해져 본다.
어느 점심엔 적당한 햇살이 있었다. 우리가 작은 광장을 지나고 있을 때. 그곳은 수수한 도서관과 겸손한 성당이
이마를 맞댄 그녀의 동네 빌주프. 새로 생긴 식당에서 런치를 먹어본다. 그녀가 종종 생각만 했던 일이다. 어느 오후엔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살다 죽은 마을로 향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주.
우리가 공유하는 미적 완벽주의는 주린
배를 잡고도 식탁에 놓인 노란 장미를 기어코 매만지게 한다. 사진에 잘 나오도록. 우리가 공유하는 음악에
대한 감성은 몇몇 특별한 곡들을 Y잭으로 나눠듣게 한다. 때로는 진통제이고
때론 환각제. 실은 둘이 하나. 우리는 둘 다 석양의
사람들이다. 그녀 방에서 보이는 석양에한껏 먹먹해져 잠시 침묵한다.
68혁명 시기 활동하던
철학자 르페브르는 산업화가 절정이던 그 당시 파리에 무척 절망하고 분노했다. 도시적 삶의 리듬이 영혼을
말라죽이고 계급과 불평등은 확고하다 통탄하면서 소규모 커뮤니티 기반의 대안 도시를 꿈꿨다. 그 시대의 난개발과 기능 지상 주의의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뚜렷하다. 만원 지하철 속 형광등의
피로와 지나친 접촉의 껄끄러움은 파리의 숙명이기도 하다. 파리는 수많은 낭만과 환상을 팔아왔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파리에 머물다갈 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나의 파리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앞으로도 한참은 내 친구 S의 조각들이라고 답할 것 같다. 이곳은 그녀의 고독과 좌절의 삶터이고 또한 희망과 위안의 시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녀가
느낀 내밀한 기쁨과 설렘은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어 기뻤다. 그녀의 모순과 아집의 실마리를 잡으려고
보낸 어느 밤은 아프면서도 달았다.
나는 어느새 다시 국경을 넘는 기차를 기다렸다. 플랫폼에 서서, 우리는 두 뺨을 맞대는 프랑스식 인사로 작별했다.
이미 3년 전에 약속된 것이다. 이
촉감, 이 짧은 순간, 이 작은 의식이 또 한 동안 우리 삶을 지속시킬 것.
우린 이번 생에서 많은 것을 망쳐버렸지만 포기하지는 않는다. 겨울을 뚫고
새로운 싹이 올라온다. 바로 저기 보인다.